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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채식과 건강

출처 :: 가정의학과 노용균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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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 여행을 하다 보면 기다려지는 시간이 식사시간인데 음식을 나누어주기 전에 승무원들이 보통 준비된 음식과 다른 음식을 주문 승객에게 가져다주는 장면을 자주 보게 된다.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준비된 음식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앞으로는 이런 광경을 외국 여행할 때 비행기 안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서도 종종 목격하게 될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채식을 하는 사람이 점점 늘어가고 있고 채식만 전문으로 하는 식당과 뷔페가 생기고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채식은 완전히 식물성 음식만 먹고 동물성 음식은 전혀 먹지 않는 것인가? 국제채식주의자연합의 채식주의에 대한 정의에 따르면 '채식주의자는 모든 동물(짐승, 물고기, 새)의 고기를 전혀 먹지 않고 식물만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달걀과 유제품은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다'라고 말하고 있어 100% 식물성 음식을 먹는 다기보다는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채식의 역사는 사람이 원래 육식을 했는지 아니면 채식을 했는지에 대한 논쟁의 역사만큼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주로 종교적, 사상적 이유로 채식을 하였으나 최근에 들어서는 건강상의 이득, 환경, 자원문제와 같은 또 다른 이유로 채식주의자가 늘어나고 있다.

채식을 하게 되면 어떤 좋은 점이 있을까. 채식주의자나 환경운동 단체의 주장은 크게 기아문제 해결, 자원의 효율적 이용, 환경보호 효과, 건강상의 이득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1년에 세계에서 영양실조로 사망하는 사람이 2천만 명인데 미국에서 고기 섭취를 10% 줄이게 되면 가축사료용 곡물을 생산하는 농지를 이용하여 사람이 먹을 수 있는 곡물 생산을 증대시켜 1억 명의 식량을 얻을 수 있으므로 기아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효율적인 자원 활용면에서도 쇠고기로부터 단백질 1칼로리를 얻기 위해서는 화석연료 78칼로리가 필요한데 비해 콩 단백질 1칼로리를 얻기 위해서는 2칼로리 밖에 필요하지 않으며 대량으로 고기를 생산하기 위한 대규모·공장식 축산이 세계적인 환경문제 중의 하나로 부각되고 있다. 즉 곡식을 먹여 키운 고기 중심의 식생활 체계는 자원을 낭비할 뿐 아니라 환경을 파괴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이유뿐 아니라 우리에게 채식이 관심이 되는 것은 건강상 이득이다. 여러 연구와 조사에 의해서 채식이 건강에 도움이 되고 질병 치료에 효과적임이 밝혀졌는데 특히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늘고 있는 심혈관계 질환인 고혈압, 협심증, 심근경색, 동맥경화와 뇌졸중, 혈액 속에 지방질(콜레스테롤)이 높은 고지혈증, 당뇨병 치료에도 채식이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의학협회지에 발표된 연구결과에 따르면 다양한 건강 식품, 과일, 채소, 정백(精白)하지 않은 곡물, 저지방 육류, 유제품 등을 많이 먹는 여성들이 암이나 심장질환으로 인해 사망할 확률이 다른 여성들에 비해 30%나 낮다고 밝히고 있고 다른 연구에서는 야채와 과일을 평균 5회 이상(남자 평균 5.8회, 여자 평균 5.1회) 먹는 사람은 3회 미만 먹는 사람에 비해 뇌졸중(중풍)의 위험이 31%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채식을 하게 되면 암, 특히 유방암, 대장암의 발생률이 낮아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과 뉴질랜드의 연구에 의하면 채식주의자들은 육식주의자들보다 암으로 사망할 가능성이 4０％나 낮게 나타났는데 이런 결과는 주로 섭취하는 음식에 따른 영향으로 생각되는데 채식주의자들은 채소·과일·곡류·콩 및 견과류를 다량 섭취하며 이런 음식에는 포화지방이 적고 불포화지방과 탄수화물이 상대적으로 많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채식을 하게되면 비타민 Ｂ12를 제외한 여러 종류의 비타민을 훨씬 많이 섭취하게 되는 반면 철분과 아연의 섭취량은 낮고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준도 육식주의자들에 비해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고혈압과 고지혈증(고콜레스테롤혈증)은 앞서 이야기한 허혈성 심장질환(협심증, 심근경색)과 중풍이라고 알고 있는 뇌졸중의 발생을 높이는 주요 인자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를 해석할 때 주의할 점은 이런 연구는 대부분 철저하게 채식을 하는 사람이 아닌 상대적으로 육식을 적게 하고 채식을 많이 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연구한 결과라는 것이다.

그러면 채식에 따른 건강상 해는 없을까? 생선·우유·달걀도 먹지 않고 순수하게 식물성 식품만 섭취할 경우 필수 아미노산 결핍이 우려되고 동물성 식품에만 들어 있는 비타민 B12도 부족하게 되는데 이 비타민이 부족하면 빈혈이 발생하고 가장 흔한 빈혈의 원인이 되는 철분의 섭취율도 낮아지는데 특히 임산부에서는 주의하여야 한다.

또한 우리 나라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균형식을 하는 사람이라도 칼슘 섭취량이 하루 권장량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되는데 완전하게 채식을 하는 경우 칼슘 섭취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어 골다공증이 생길 위험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뿐 아니라 최근 보도에 의하면 생물학적인 가치가 높은 단백질을 함유하고 있는 육류를 통해 충분한 단백질을 섭취하지 않는 사람들은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의 수준이 낮아져 성기능 감소와 근육상실, 적혈구 감소 및 골밀도 저하 등이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고 동물성 단백질을 배제한 엄격한 채식주의 식이요법을 13년간 실시한 영국의 30대 남자가 시신경이 쇠퇴하여 눈이 거의 실명 단계까지 갔다는 보도도 있다.

일부에서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밥상 위에 다시 고기를 올려놓아라`라고 주장하면서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은 다름 아닌 밥과 같은 탄수화물로 이를 지나치게 섭취하면 탄수화물을 지방으로 저장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의 분비가 늘어나 체내에 지방의 양이 늘어나 질병을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이상에서 채식의 건강상 이득과 불리한 점을 살펴보았다. 우리 나라의 채식주의는 이제 시작이며 영국의 350만명(인구의 6.1%), 독일 70만명(1.25%), 미국 180만명(1%)에 비하여 채식주의자 수도 극히 적고 외국의 경우 채식주의가 종교적, 기아문제, 동물문제, 환경문제 등과 결합한 정치 사회적 운동 성격이 강하다면 우리 나라는 아직 개인적인 측면, 즉 건강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더 큰 것이 현실이다. 종교적, 사상적, 환경적 이유가 아닌 건강을 위해 채식을 한다면 동물성 음식을 전혀 섭취하지 않기보다는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하는 균형 잡힌 식습관을 갖는 것이 좋으며 특히 자신의 조건, 고지혈증, 고혈압, 비만, 당뇨병 치료 유무에 따라 적절하게 식사 계획을 세우는 것이 좋겠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식생활 습관도 중요하지만 이와 함께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정상체중을 유지하고 스트레스를 잘 관리하는 것 또한 중요함을 잊어서는 안되겠다.